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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통하지 않을까 / 황창연 신부 본문

서론: 우리는 왜 소통에 갈증을 느끼는가
현대 사회는 유례없는 통신 기술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든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시대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현대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고립감과 소통의 부재를 호소한다. 황창연 신부는 그의 저서 "왜 우리는 통하지 않을까"를 통해 이 모순된 현상의 원인을 파헤친다. 소통이 되지 않는 이유가 단순히 '말재주'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자기 이해'의 결핍에 있음을 지적하며, 관계의 회복을 위한 근본적인 성찰을 제안한다.
소통의 전제 조건: 나 자신과의 화해
저자가 책 전체를 관통하며 강조하는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소통의 시작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다"라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타인과의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만,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무지한 경우가 많다.
자기 자신과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은 내면의 결핍을 타인을 통해 채우려 한다. 자존감이 낮은 상태에서는 타인의 사소한 조언도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칭찬조차 의심하게 된다. 황창연 신부는 내가 나를 온전히 사랑하고 수용할 때, 비로소 타인의 말을 왜곡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이 형성된다고 말한다. 즉, 건강한 이기주의, 즉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타인을 존중하는 이타주의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된다는 것이다.
불통의 벽: 왜 우리의 대화는 어긋나는가
책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불통'의 여러 가지 양상을 심리학적, 영성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첫째는 '고정관념의 덫'이다. 우리는 흔히 "저 사람은 원래 저래", "내 남편은 절대 안 변해"라는 식의 단정을 내린다. 이러한 낙인은 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소통의 문을 닫아버린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놓은 이미지 속에 가두어 버리기 때문이다.
둘째는 '투사와 왜곡'이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콤플렉스를 상대방에게 투사하여, 상대가 하지도 않은 말을 들었다고 믿거나 상대의 의도를 악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이다. 저자는 이를 "자기 마음의 거울이 깨져 있기 때문에 세상이 일그러져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셋째는 '비교와 경쟁'이다. 한국 사회 특유의 비교 문화는 대화를 풍성하게 만들기보다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를 가리는 전쟁터로 만든다. 상대의 불행에서 위안을 얻고, 상대의 행복을 시기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면 그 어떤 유려한 대화 기술도 진심에 닿을 수 없다.
관계를 살리는 기술: 경청과 공감의 미학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소통의 벽을 허물 수 있을까? 황창연 신부는 화려한 수사학 대신 '잘 듣는 법'에 주목한다.
진정한 의미의 경청(Active Listening)은 단순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말하는 단어 너머의 감정과 갈망을 읽어내는 능동적인 행위이다. 저자는 "그랬구나", "힘들었겠네"와 같은 단순한 추임새가 논리적인 조언보다 훨씬 강력한 치유의 힘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는데, 공감 어린 경청은 바로 그 존재론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또한, '나-전달법(I-Message)'의 활용을 제안한다.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며 "너는 왜 그래?"라고 공격하는 대신, "네가 그렇게 행동하니 내 마음이 슬프다"라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는 비난의 화살을 거두고 대화의 통로를 열어두는 지혜로운 방식이다.
관계의 지혜: 건강한 거리 두기와 용서
저자는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라고 조언한다. 이는 종교인으로서 의외의 답변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인간 관계의 현실을 꿰뚫는 통찰이다. 나를 지속적으로 파괴하고 에너지를 뺏어가는 독성 관계(Toxic Relationship)에서는 적절한 심리적, 물리적 거리를 두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길이다.
이와 연결되는 개념이 바로 '용서'이다. 저자가 말하는 용서는 상대를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에게 끼친 영향력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키는 작업이다. 미움은 나를 상대방에게 꽁꽁 묶어두는 쇠사슬과 같다. 용서를 통해 그 사슬을 끊어낼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운 소통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다.
결론: 사랑만이 유일한 통로다
결국 황창연 신부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최종적인 메시지는 '사랑'이다. 소통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의 문제이다. 아무리 세련된 대화법을 익힌다 해도 그 안에 상대를 향한 따뜻한 시선과 연민이 없다면 소통은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서로의 부족함을 비난하기보다 그 틈을 이해와 배려로 채우려 노력할 때, 비로소 '통(通)'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왜 우리는 통하지 않을까"는 불통의 시대에 지친 우리에게 타인과 연결되는 가장 빠른 길은 다시금 '나'를 사랑하고, 그 사랑의 넘침으로 '너'를 바라보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지금 누구와 소통하고 싶습니까? 그리고 그 이전에, 당신은 당신 자신과 진실하게 마주하고 있습니까?" 소통의 기술을 연마하기보다 마음의 밭을 일구라는 신부님의 조언은,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길을 잃은 우리에게 명쾌한 이정표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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