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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잘하는 유대인, 질문 못하는 한국인 / 김정완 본문

유대인은 배움을 삶의 중심에 두는 민족이다. 그들은 지식을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삼으며, 배움의 출발점을 질문에서 찾는다. 유대교의 경전인 토라를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질문은 핵심이다. 토라를 통해 하나님을 닮아가려는 그들의 교육은 질문을 통해 진리를 탐색하고, 토론을 통해 사고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유대인의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대화하며 스스로 깨닫는 과정이다.
반면 한국인은 오랜 역사적·사회적 배경 속에서 질문을 억제하는 문화 속에 살아왔다. 일제강점기의 억압적 교육, 군사정권 시절의 권위주의적 사고, 그리고 입시 중심의 교육 체계는 질문을 불필요하거나 불편한 것으로 여겨왔다. 교실에서는 교사가 던지는 질문에 학생이 답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며, 학생이 스스로 질문을 만드는 경험은 거의 없다. 질문은 토론으로 이어지지 않고, 일회성으로 소비된다. 이러한 환경은 창의적 사고와 자기주도적 학습을 저해한다.
유대인의 교육은 하브루타(Havruta)라는 전통적 학습 방식에 기반한다. 이는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 질문하고 토론하며 배우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은 단순히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 문제를 재구성하고, 다양한 관점을 탐색하며, 스스로 사고하는 힘을 기른다. 유대인은 질문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고, 공동체와의 관계를 확장하며, 삶의 방향을 설정한다.
한국인은 질문을 두려워한다. 질문은 틀릴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는 학생들이 질문을 회피하게 만들고, 정답만을 추구하는 수동적 학습 태도를 강화한다. 질문을 하지 않으면 사고는 정체되고, 배움은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유대인의 질문 문화는 단지 교육적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종교적, 문화적, 철학적 기반 위에 형성된 삶의 방식이다. 질문은 그들에게 존재의 이유이며, 진리를 향한 여정이다. 반면 한국인은 질문을 통해 배움을 실현하기보다, 정답을 통해 평가받는 구조 속에 갇혀 있다. 이 차이는 단순한 교육 방식의 차이를 넘어,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질문은 배움의 시작이다. 질문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세계를 이해하며, 타인과 소통할 수 있다. 유대인은 질문을 통해 자신을 확장하고, 한국인은 질문을 통해 자신을 억제한다. 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본질을 되돌아보고, 질문을 중심에 두는 학습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질문은 용기이다. 질문은 자유이다. 질문은 성장이다. 유대인은 질문을 통해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를 실현하며, 한국인은 질문을 통해 억눌린 사고를 해방시킬 수 있다. 질문을 잘하는 유대인과 질문을 못하는 한국인의 차이는 질문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된다. 질문을 두려워하지 말고, 질문을 통해 배우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배움의 시작이며, 미래를 여는 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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